
나는 무엇으로 사는가?
새벽녘 다짜고짜 찾아온 영하의 날씨 겨울이 한파가 구룡포에도 점점 기세를 더 높이고 있는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몰두한다. 알 수 없는 꿈들이 뒤 섞여서 밤새도록 나를 괴롭힌 결과가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? 의문의 화두를 얻게 되었다. 누워 있어도 불편하고 앉아 있어도 불편해서 차가운 마당을 혼자 서성인다. 머리를 떠나지 않는 서막 같은 한 줄의 문구가 계속 나를 괴롭힌다.
2025년 나는 무엇으로 살고 싶은가?
스위스라는 옆 동네의 사람들은 삶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. 건강한 신체, 부지런한 아내, 은혜로운 신, 축복받은 죽음이라고 한다. 우리 모두 익히 잘 수행해온 일들인 것 같다. 뭐 특별함이라고는 축복받은 죽음이겠다.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고 했던 고등학교 은사님이 생각난다. 그분도 승리를 했는지 안부를 물어 보고 싶다. 나에게 간절한 삶의 조건 네 가지를 찾아보고 싶다.
2025년 살고 싶은 삶의 조건 네 가지
먹고 살 만큼의 돈, 가족들의 건강, 정년 없는 일자리, 힘을 낼 수 있는 긍정적인 노래. 그냥 생각나는 데로 무의식에서 시키는 대로 찾아서 적어 본다. 갑자기 노래가 왜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, 그래도 세상 살면서 한탄하는 시간에 긍정적인 노래 한 번으로 위로와 회복의 능력을 기대한 것 인지도 모르겠다. 삶의 조건이 꼭 네 가지여야 할까? 궁금증이 밀려온다.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만의 네 가지 조건들이 어떤가요.
다시 돌아와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?
2024년을 지나 2025년 을사년도 7일이 지나가고 있다. 노트에는 버킷리스트가 찬란하게 빛을 내면서 첫 장에 적혀 있고, 그다음 장에는 매일 해야 되는 나만의 일들이 시간을 따라서 숨 가쁘게 적혀 있다.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왠지 여기서 멈추면 탈락할 것 같은 강박관념들이 나의 허리를 나의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다. 50년 후반이 되기까지 한 번도 무엇이라는 생각 없이 그냥 주어진 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. 무엇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빡빡한 삶이었던 것 같다.
이제 한 문턱 나이라는 관문의 허들을 넘을 때마다 여유는 없어지고 조급해지면서 조바심마저 나는 것 같다.